본문 바로가기
01장. 여행의 역사/1. 유럽

[01-01] 3. 르네상스부터 근대까지의 여행

by T스토리안 2024. 4. 22.
반응형

1) 르네상스 시대의 여행

르네상스 또는 문예 부흥은 유럽 문명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일어난 문화 혁신 운동을 말한다. 르네상스 시대는 인간의 개성과 능력 및 존엄성 강조하는 휴머니즘사상의 발달에 따라 교양과 인문학이 강조되었다. 교양과 인문학적 역량을 함양하기 위해 귀족, 특히 그들 자제들을 중심으로 한 해외 여행이 시작되었다. 한편 작가 및 사상가들은 유럽 여행을 통해 작품 활동의 자극제를 마련하였다. 당시의 외국 여행은 종교적 갈등, 교통수단의 미비, 막대한 경비 등의 이유로 근거리 주변 국가 여행으로 국한되는 경향이 있었다.

 

2) 그랜드 투어

17세기 중반부터 영국에서는 경제적 호황, 종교 갈등 완화, 대학교육에 대한 불신 등으로 인하여 귀족 자제들은 국내에서 대학 교육을 받기보다는 경험과 견문을 넓히고 인맥을 형성하기 위해 외국을 여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그랜드 투어를 귀족들의 엘리트 교육을 마무리하는 최종단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외국 여행은 로마를 목적지로 주변 국가를 장기간 여행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는데, Richard Lassels는 1670년 발간한 그의 저서 '이탈리아 여행(The Voyage of Italy)'에서 이러한 교양 관광을 그랜드 투어(grand tour)로 명명하였다. 그는 저서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도는 그랜드투어를 다녀온 사람만이 리비우스와 카이사로를 이해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랜드 투어의 정의에 대해서는 이후 다양한 논의가 있었는데, Bruce Redford는 1996년 발간된 그의 저서 '베니스와 그랜드 투어(Venice and the Grand Tour)'에서 그랜드 투어는 여행 주체는 젊은 영국의 남성 귀족 또는 젠트리(gentry)이어야 하고, 여행을 전적으로 계획하고 책임지는 가정교사가 있어야 하고, 로마를 최종 목적지로 삼아야 하며, 여행 기간은 평균 2~3년 내외이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젠트리는 영국에서 귀족으로서의 지위는 없었으나 가문의 휘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받은 유산 계층을 지칭하며 통상 정치인, 관료, 판사, 재벌 등의 학력, 재력, 권력을 갖춘 상류층을 의미하였다.

이들의 기본 여행 경로는 파리를 거쳐 로마로 가는 것이며, 로마로 가는 과정 및 영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의 주요 도시, 밀라노, 베니스,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 북부의 주요 도시, 그리고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네덜란드의 주요 도시들을 경유하였다.

영국 작가 윌리엄 백포드(William T. Beckford)의 1780년 그랜드투어 경로
© Wikimedia Commons

그랜드 투어 동안 이들은 어학 능력, 역사·문화·경제·예술에 대한 지식을 함양하였고 매너를 익혔으며 인맥을 형성하였다. 그랜드 투어는 귀족 자제들의 도박, 음주, 성적 기행 등으로 지탄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여행 전반은 곰 조련사(bear leader)라고도 불리는 가정교사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었고 여행의 과정은 수시로 부모에게 보고되었다. 가정교사로 토마스 홉스, 존 로크, 애덤 스미스 등 당대의 학자들이 참여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애덤 스미스는 가정교사로 그랜드 투어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국부론’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랜드 투어의 가정교사를 곰 조련사로 풍자한 삽화
© Wikimedia Commons

그랜드 투어는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신흥 부르조아의 출현으로 인해 더욱 확대되었으며 영국을 넘어 유럽의 다양한 국가로 확대되었다. 특히 지성인을 대표하는 신사(gentleman)는 예의와 교양을 강조했으며 교양 함양을 위한 여행(특히 유럽 여행)은 신사가 거쳐야 할 필수 과정들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최초의 그랜드 투어가 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젊은 귀족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18세기부터는 점차 더 넓은 연령대가 참여하였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및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등으로 인해 여행의 위험이 증가하자 그리스가 그랜드 투어의 인기 목적지로 부상했다.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의 그랜드 투어는 점차 사라졌다. 반면, 19세기 미국의 상류층은 유럽을 여행하는 것이 교양을 함양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간주하였으며 이 전통은 19세기 말까지 이어졌다.

한편 그랜드 투어에 나선 영국의 여행자들은 귀국하는 과정에서 유럽 대륙의 많은 예술품들을 구매하고 유물을 수집하였다. 귀족들은 이러한 예술품을 통해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도 하였지만 이들이 수집한 많은 컬렉션들이 대학이나 국가의 여러 박물관에 기증되어 영국 박물관들의 전시품을 풍성하게 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랜드 투어 당시 영국과 이탈리아 감정가들의 예술품 수집
© John Zoffany / © Giovanni Paolo Panini

 

3) 교통의 발달과 대량 여행

18C 이후 근대 관광의 대표적 특징은 그랜드 투어가 점차 쇠퇴해지고 중산층과 여성들도 여행에 참여하게 되는 등 대량 관광(mass tourism)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19C에 들어서면서 증기선 및 기차 등 교통수단의 발달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해상 및 육상관광이 용이해짐에 따라 대량 관광의 발판이 마련되었으며, 20C 들어 교통편은 더욱 발달하여 대서양 횡단 여객선이 등장하였고 정기항공편도 나타났다. 19C는 여행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 증기선 및 철도
© Fred Pansing / © A. B. Clayton

 

4) 토마스 쿡 여행사와 패키지 여행

대량 관광의 발달에 따라 여행 알선업이 나타났는데 대표적인 것은 토마스 쿡(Thomas Cook) 여행사이다. 영국의 목사인 토마스 쿡은 1841년 금주동맹(Temperance Sciety)의 금주 운동 행사에 참여하는 약 600여명의 여행객을 모집하여 운송(기차), 숙박, 식사, 여행을 포함하는 패키지투어 여행모델을 최초로 시도하였다. 4년 후 토마스 쿡은 여행 알선을 전문으로 하는 '토마스 쿡' 여행사를 설립하였다.

1841년 토마스 쿡의 금주동맹 열차 여행(최초의 패키지 여행)
© WCSA

 

토마스 쿡 여행사의 세계여행 상품 안내 포스트 및 여행 가이드북(1888년)
© WCSA / © Wikimedia Commons

토마스 쿡 여행사는 사실상 최초의 여행사라고 할 수 있으며 현대의 패키지여행과 큰 차이가 없는 여행 모델을 약 180년 전인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적용한 여행업의 선도적 기업이었다. 토마스 쿡 여행사는 리조트와 호텔, 항공사 등을 운영하는 한편 세계 약 60개국으로 지점을 확대하여 영국 최대 여행사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토마스 쿡 여행사는 여행업에서 최초의 수식어를 많이 가진 기업인데 대표적인 것으로 최초의 패키지여행, 최초의 열차패스, 최초의 여행자 수표, 최초의 크루저 여행 등이 있다.

그러나 토마스 쿡 여행사는 시대의 변화를 적절하게 수용하지 못하여 2019년 한화 약 2조5천억원의 누적 적자로 인해 파산했다. 토마스 쿡 여행사의 파산 원인은 여러 가지로 설명되는데 호텔 예약 등에서 온라인 여행사들이 발전하는 가운데서도 오프라인 판매만 고집했다는 점, 자유여행의 확대에도 패키지여행 상품만 판매했다는 점, 유가 상승 등으로 재무상태가 나빠짐에도 항공사를 계속 운영한 점, 브렉시트에 대한 불안 및 고온으로 인한 여행 축소 등으로 여행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점 등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토마스 쿡 여행사는 2020년 하반기에 온라인 여행사로 재출범하였다.

 

5) 호텔과 카페의 발달

여행의 발달에 따라 근대적인 숙박시설이 19C부터 발달하였고 호화 호텔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19C 중반 유럽 왕권과 귀족 세력의 붕괴로 궁전 내 사교모임은 궁전 밖 호텔로 이동하였고, 이들을 위한 호화 호텔이 발달하였다. 20C에는 일반인들의 여행도 증가함에 따라 저렴하고 쾌적한 숙박시설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여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이 발달하였다. 또한 사교나 휴식을 위한 카페도 발달하였다.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 인근에 위치한 파리 그랜드 호텔과 호텔 1층에 위치한 Cafe de la Paix는 이러한 변화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장소라 할 수 있다.

오페라 가르니에(우측)와 파리 그랜드 호텔 전경
© cafe de la paix

Cafe de la Paix의 풍경(Georges Croegaert, 1890년대 추정)
© Georges Croegaert

 

6) 여행 안내서의 발달

여행 안내서는 고대 시대부터 사용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안내서는 여행자를 위한 체계적인 안내서라기 보다는 이동 경로나 거리, 흥미로운 장소와 건축물, 조각 등에 대한 간단한 안내서였다. 중세에서는 순례여행 후기를 남겨 다른 순례여행자들을 돕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안내서들은 인쇄술이 발전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다수를 위한 일반적인 여행 안내서로 보기는 어렵다.

인쇄술이 발전하고 그랜드 투어가 활발해짐에 따라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을 여행하기 위한 여행안내서들이 발간되었는데, 이들 안내서에는 여행 경로, 명소, 간단한 실용 회화 정보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여행 안내서 중 하나는 그랜드 투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Richard Lassels이 저술한 ‘이탈리아 여행(The Voyage of Italy)’으로 여러 국가 사람들의 성격, 주요 도시, 교회, 수도원, 무덤, 도서관, 궁전, 별장, 정원, 그림, 동상 및 유물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정부, 권력, 경제 등에 대한 설명도 포함하고 있다. 18세기 내내 그랜드 투어 가이드북이 쏟아져 나왔는데, Patrick Brydone의 ‘시칠리아와 몰타 여행(A Tour Through Sicily and Malta)’, Mariana Starke의 여행 안내서 시리즈는 당시 인기있는 여행 안내서였다.

The Voyage of Italy(17세기 발행본 및 2018년 발행본)
© Wikimedia Common

18세기까지의 여행 안내서들은 주로 그랜드 투어에 참여하는 부유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집필되었는데, Mariana Starke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안내서를 집필하여 여행 안내서의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녀는 19세기 들어 해외를 여행하는 영국인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가족 단위의 여행을 선호하며 여행 경비도 여행에서 중요한 요소로 간주한다는 점을 파악하여 이러한 요구를 반영한 가이드북을 발간하였다. 그녀가 집필한 안내서에는 수화물, 여권 취득, 각 도시의 음식 및 숙박에 대한 정보, 아픈 가족을 돌보는 것에 대한 조언 등을 포함했다. 그녀는 또한 오늘날 별 등급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느낌표(!!!) 등급 시스템도 고안하였다.

19세기의 또 다른 유명한 여행 안내서로는 영국 존 머레이(John Murray) 출판사가 발간한 ‘여행자를 위한 머레이 핸드북(Murray's Handbooks for Travelers in London)’, 독일 Franz Friedrich Röhling 출판사가 발간한 ‘마인츠에서 쾰른까지 라인강 여행(Rheinreise von Mainz bis Cöln)’ 등이 있는데 존 머레이는 여행가이드북에 핸드북(Handbook)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스타크의 느낌표 등급 시스템을 차용하여 별표 등급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A handbook for travellers in India, Burma, and Ceylon(John Murray, 1911)의 타지마할 안내 그림
© Internet Archive Book Images

반응형

'01장. 여행의 역사 > 1. 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01-01] 4. 현대의 여행  (1) 2024.04.22
[01-01] 2. 중세의 여행  (0) 2024.04.22
[01-01] 1. 고대의 여행  (0) 2024.04.22
[01-01] 여행의 역사(유럽) - 들어가는 말  (0) 2024.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