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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장. 여행의 역사/1. 유럽

[01-01] 2. 중세의 여행

by T스토리안 2024.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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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는 일반적으로 로마 제국이 멸망한 5세기부터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15세기까지의 기간을 지칭한다. 중세의 여행은 종교, 상업, 군사적 목적의 여행이 일반적이었으며, 왕이나 귀족 등 제한된 계층을 중심으로 개인적 여행이 이루어졌다. 기독교가 국교인 중세 유럽에서는 대부분 계층의 보편적인 여행 형태는 순례여행이었다.

중세 마창전투를 재현한 엘링턴 토너먼트(1839년)
© 작자 미상

중세의 군주는 많은 신하들을 대동하고 주교나 봉신의 성이나 도시를 방문하고 오랜 기간 체류하기도 하였다. 성직자들도 군주와 마찬가지로 많은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다른 교회나 지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한편 기사들은 유럽 곳곳에서 개최되는 마상창시합(Jousting, 주스팅)에 참석하기 위해 여러 도시들을 여행했으며 방랑가인들도 여러 성들과 궁정 그리고 마상창시합 장소를 무리지어 옮겨다녔다. '기사 윌리엄'은 중세 마상창시합이 배경인 영화로 마상창시합의 경기 방식, 방랑가인의 역할, 시합에 열광하는 귀족 및 농민 관람객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중세는 기독교로 대표되는 시대로 대부분의 계층이 종교 목적의 순례여행에 참여하였다. 기독교와 관련된 주요 성지를 순례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수행해야 할 중요한 종교적 과업이었다. 중세 초기에는 예루살렘이 대표적인 순례지였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이슬람 세력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에는 이곳으로의 여행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성지 순례의 발길은 유럽 내의 다른 성지들로 향하게 되었다. 특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교황 알렉산더3세가 12세기 '산티아고 축일인 7월 25일이 일요일이 되는 해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순례자에게는 모든 죄에 대해 속죄해주고 이듬해에 도착하는 순례자는 지은 죄의 절반에 대해 속죄해준다'고 선포하였으며, 교황 레오3세는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기독교 3대 순례지로 선포하였다. 이에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유럽 내 대표적인 순례여행지로 부상하였다. 성지순례자를 지원하기 위하여 순례 경로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들이 건설되었고 숙박과 음식 등의 서비스들이 발달하였으며 순례길에 있는 마을들은 점차 번창하여 지역의 중심 도시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나 로마에 비해 성지순례 이외의 여행은 발달하지 못해 전반적으로 볼 때 여행은 침체되어 있었다.

5명의 위트레흐트 예루살렘 순례 형제단(Jan van Scorel, 1540)
© Jan van Scorel

 

산티아고 순례길 경로
© Kimdime

중세 말 십자군 전쟁은 동서 문명의 교류를 가져왔으며, 사회, 정치, 문화, 경제적으로 큰 변화가 발생하였다. 또한 통상무역 및 문화교류가 점차 활발해짐에 따라 상업적 목적의 여행이 발달하였다. 특히, 13C 말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아시아 여행에 대한 호기심과 욕구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 경로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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